삼천사 사회복지 법인 인덕원

세존진신사리불탑

temple_10_1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불제자들은 세존의 유언에 따라 불신(佛身)을 다비(茶毘) 화장(火葬)하였다. 다비 후 부처님의 유골사리는 8등분 되어 동서남북 8개의 나라에서 모셔가 각기 대탑을 세우니, 이를 ‘분사리(분사리)’ 또는 ‘사리팔분(사리팔분) 대탑’이라고 하였다. 이때부터 사리신앙의 수행이 싹트기 시작했으며, 더불어 불탑신앙도 시작되었다.

부처님 열반 후 100년이 지나 대인도제국을 건설한 마우리아(Maurya)왕조의 제3대왕인 아쇼까는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하고, 부처님 사리를 안치한 8대탑의 불사리를 다시 8만 4천으로 나누어 전국에 널리 사탑을 세웠다.

아쇼까 왕 당시 불교신앙의 중심지였던 산치(Sanchi)에는 지금도 ‘산치대탑’이라고 하여 거대불탑이 남아 있어 아쇼까의 불심을 가늠할 수 있다. ‘산치대탑’은 거대할 뿐만 아니라 4대 탑문(탑문)과 주위 난간 조각들이 아름답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불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어 전 세계 불자들의 참배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계 제일의 탑이다.

temple_10_2

《묘법연화경》에 이르시기를 “내가 멸도한 후에 나의 전신에 공양하고자 하는 이는 마땅히 하나의 큰 탑을 세우라.”고 하여 탑이 곧 부처님의 진신(眞身) 그 자체임을 설하였다.또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탑불사의 공덕을 “불탑을 중수하거나 내지 조성하면 수명이 오래 갈 것이며, 목숨을 마치면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백천 겁 동안 복락이 계속될 것이다. 태어나는 곳마다 지난 세상의 일을 관장하며, 모든 장애를 제멸하고 모든 죄업이 소멸되어서 온갖 지옥의 고통을 여의고 항상 부처님을 뵈옵고 부처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라고 전한다.이렇듯 탑은 온전히 부처님의 진신(眞身)이며, 불자들의 신심과 원력이 함께 결집된 진신보탑도량이다.

아쇼까의 지극한 불심과 발원이 남북방불교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와 한국최초로 삼각산 삼천사에 아쇼까 4두 사자상 세존진신불탑 4대 보살(관음·지장·보현·문수)로 나투하였다. 이것으로 삼천사는 만 중생이 소원을 이루는 기도도량, 만 중생이 수행 정진하는 선불장(선불장), 만 중생이 귀의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4대 보살이 상주하는 대도량(대도량)이 되었다.

temple_10_3

또한 사경은 신앙적 가치를 부여하는 공덕경(功德經)으로 공덕을 쌓기위해 조성된 경전인데,《금강경》에 이르기를, “네 글귀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사경하고 외워 그 뜻을 일러주는 사람은 가장 높고 제일 가는 복덕과 희유한 진리를 성취한 것이요, 이 경전이 있는 곳은 부처님이 계신 곳과 같고 존경받는 부처님의 제자가 있는 것과 같다.” 하여 사경의 공덕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

삼각산 삼천사 청정도량에 부처님의 진신인 탑에 오색 영롱한 진신사리 7과와 손수 한글자 한글자 사경한 금강경 법신사리600과를 봉안하여 세존진신사리 9층 불탑을 봉찬하였으니 삼천사는 삼계(三界)의 사표(師表)가 되었으며, 법계(法界)가운데 영부로 만중생의 귀의처가 되었다.

세존진신사리 불탑은 한국 석탑의 새로운 양식으로, 오대산 월정사 8각9층탑(국보 제48호)과 초전법륜지인 인도 사르나트아쇼까 석주 4두 사자상을 원형 그대로 접목한 탑신 15m로서 삼천사 사부대중의 염원과 아쇼까 왕의 지극한 발원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상륜부의 아쇼까 4두 사자상은 8정도의 가르침이 담긴 법륜에 안치되었고, 9류 중생의 안녕과 보살이 화엄 10지에 이른 후 정토세계의 9품 연대에 오르기를 발원하는 보리심이 불탑에 그대로 묘사되었다. 기단과 탑신부에는 석굴암 8부 신장과 사천왕상, 8보살상과 8여래불이 양각으로 조각되었다.

불탑 복장에는 오색 영롱한 세존사리 7과와 불자들이 소지한 금은칠보로 염원과 정성이 담긴 공양물인 봉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