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 사회복지 법인 인덕원

종형사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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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란 참된 불도 수행의 결과로 생기는 구슬 모양의 유골을 말한다. 범어 사리라(Sarira)의 음역으로서 산골(散骨), 유신(遺身), 영골(靈骨)이라고 번역하고, 사리를 세는 단위로는 ‘과(果)’를 사용한다. 사리는 크게 전신사리(全身舍利)와 쇄신사리(碎身舍利)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 전신사리는 다시 법신사리(法身舍利)와 색신사리(色身舍利)로 분류한다.

법신사리(法身舍利)는 여래의 법신을 가리키는 것으로써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주하며, 구경에도 무너지지 않으므로 견고자(堅固子)라고 한다. 색신사리(色身舍利)는 형태가 색신으로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닦아 도행(道行)을 이룬 것을 말한다. 이것은 형태가 색신이지만 금강불괴(金剛不壞)의 고체로 변한 것이다. 이 사리는 부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삼천사의 종형사리탑은 가로 3.1m, 세로 3.1m의 4각대석 위에 놓여 있다.무진년 4월, 평산 성운 화상이 미얀마를 성지순례할 때 마하시사사나사원에서 아판디타 대승정(大僧正)으로부터 전수받은 부처님 사리 3과를 88올림픽의 성공 기원을 담아 종 모양의 돌탑[石鐘塔]속에 봉안하였다. 대웅보전 위쪽 계단을 오르면 마애불전 앞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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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尊眞身舍利寶塔碑銘

白頭靈岳의 精氣가 모여 白雲·仁壽·萬景으로 치솟는 海東의 靈山 三角山은 부처님의 法輪이 일고 있는 古佛의 道場이다. 여기서 우리 祖上들은 生滅의 슬픔을 뛰어넘는 無生의 智慧를 닦아 天地와 더불어 一如를 이루었고 一心의 眞源을 깨달은 이는 三界의 師表가 되었으니 三角山은 法界 가운데 靈府로다.

三角山 靈地에 자리한 三千寺는 當初 元曉大師가 開山하고 高麗代에는 三千 大衆이 修道하던 大刹로서 朝鮮代 壬亂時 消失되었다. 近年 聖雲 和尙이 精進修道 中 非夢似夢間에 三角山 三千洞 巖壁의 優雅하고 慈悲로운 磨崖佛을 親見하고 이에 願力을 세워 重創復元하고 磨崖佛을 國家寶物로 指定케 하고 이제 世尊舍利寶塔과 羅漢舍利塔을 建立하게 되었다.
금번 奉安한 世尊舍利 三顆와 羅漢舍利 三顆는 聖雲 和尙이 聖地巡禮 中 버마國 마하씨사사나 寺院에서 우판디 大僧正으로부터 專受받은 것이다. 世尊舍利를 寶塔에 奉安信仰하게 되니 이제 三千寺는 法身在位의 聖地가 되었으며, 靈鷲의 德化를 지니게 되었다. 이곳에 머물고 인연을 맺은 사람은 한결 같이 靈應을 얻고 覺地에 올랐으니 이는 三千寺가 지닌 不思議한 加被 때문이다. 恒常 이곳에 差別 없는 玄應이 일고 金鷄가 울며 九光의 빛이 充滿하여 마치 光網을 베푼 것 같아 곳곳에 祥瑞로움이 가득하다.

보아라. 萬像은 귀를 열고 山光水色은 萬德을 具足한 法身을 빚고 있지 않는가. 맑은 바람은 本分消息을 전하고 생각마다 諸佛이 出現하고 걸음마다 一切菩薩이 다시 태어난 것 같으니 이 모두가 世尊舍利의 功德때문이로다.元來 舍利는 戒定慧 三學의 結晶體이며, 法身 그 自體이다. 世尊께서 有緣衆生을 濟度하고 涅槃에 드신 후 全身이 五色燦爛한 八斛四斗의 舍利로 出現하시어 無數衆生의 福田이 되셨다.여기에 法身을 證得코자 마음을 닦는 이는 始終이 없는 法悅을 얻을 것이고 願을 모아 功德을 성취코자 하는 이는 滿藏의 圓音을 듣고 一乘의 眞味를 깨달아 德化를 입지 않는 이 없을 것이다. 한량없는 목숨의 바다와 法身의 瑞氣가 이곳에 뿌리를 내렸으니 한 티끌마다 佛地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新羅 慈藏律師가 文殊菩薩로부터 佛舍利를 傳受받아 五大名山에 造塔奉安한 후 歷代로 佛舍利塔造成이 드물었다. 이번 三角山中 吉祥地 三千洞 磨崖佛前에 寶塔을 造成한 것은 聖雲 和尙과 四部大衆의 多生善根이라 아니할 수 없다.더욱 人類의 祝祭인 八八 서울올림픽을 記念하고 統一을 向한 民族의 念願을 담았으니 빌고 닦는 마음에 한량없는 光明이 充滿할 것이다.

아아 이 神靈한 靈驗은 마침내 千門으로 하여금 善에 들어오게 하고 또 一國으로 하여금 仁을 興起케 할 것이니 참으로 세상에 貴한 寶貝라 하지 않으리요.

證明 月山聖林 觀應智首 會主 太虛 月誕 維那 性坡 道馨
雉岳山 沙門 比丘 正休 謹撰 宣指學人 性愚 敬書 徐萬錫 謹刻
住持 慈顔 聖雲 信徒會長 金正見行
佛紀 二五三二年 戊辰陰十月十日奉安 監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