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사 사회복지 법인 인덕원

삼천사 유물관

북한산 증취봉(甑炊峰) 서쪽자락에 넒게 자리했던 삼천사는 고려때 창건된 큰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 2008년부터 시작된 발굴작업으로 수많은 유물들이 세상밖으로 나오고 있다.

 

건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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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에서 올라오는 계단부가 심하게 붕괴되어 있으나 다행히 여타 구조물들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중심 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추정되며, 정면의 주초간 거리는 270cm이다. 4개의 주초 중 3개가 남아 있고 나머지 1개는 교란되어 있는 상태이다. 건물지 안쪽에 화강암 장대석으로 만든 불단이 있는데 잔존부의 크기는 가로 190cm x 세로 170cm이다. 건물지 하부에 온돌시설의 일부인 고래가 지나가는데 화강암할석과 기와편을 사용했고 점토를 활용하여 마감하였다. 출토유물로는 유구 전역에 걸쳐 분청사기 인화문편과 도기편 등이 수습되었으며, 기와류로는 청해파문과 복합어골계의 와편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대지국사탑비 귀부 및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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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의 크기는 높이 137.5cm, 넓이 240cm, 길이 270cm이며, 이수의 크기는 가로 185cm, 세로 55cm, 폭 80cm이다. 귀부는 용의 머리와 흡사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배면(背面)에 육각형의 귀갑문이 베풀어져 있는데 그 안에 ‘王’자가 새겨져 있다. 발부분은 ‘L’자형으로 처리하여 비늘문을 장식했고, 귀갑대를 주름문으로 표현하여 돌리고 연주문을 장식한 점은 고려 전기 법상종 사찰인 현화사비, 원주 법천사지, 안성 칠장사 혜소국사비, 금산사 혜덕왕사비 귀부의 양식과 유사하다. 이수는 귀부 정면에 놓여 있는데,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두 마리 용을 운문과 더불어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는데 앞뒷면에 각각 두 마리씩 배치하여 대칭적인 모양을 보여주고 있으며, 측면에도 운룡문이 베풀어져 있다.

대지국사명문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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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편찬된 <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법상종파 승려인 대지국사 법경의 비문으로 추정되며, 비문의 파편 255점이 발굴되었다. 비문의 내용은 단절된 구절이 대부분이라 비문 전체 판독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비문의 찬자 바로 뒤에 등장하는 최홍검이라는 인물이 비문을 직접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유가백축문(법상종의 중심 경전인 <유가사지론> 100권)과 대지국사 법경의 출신지와 나이 등을 확인 할 수 있다.

청동 사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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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 8.9cm, 높이 8.3cm인 청동 사리함은 북쪽기단하부에서 출토되었다. 뚜껑의 윗면에 2조의 원형 음각선을 2.1cm 간격으로 2줄 장식하였고, 뚜껑과 몸통 옆면에도 약 0.1cm 정도의 촘촘한 간격으로 음각장식이 되어있다. 원형의 몸통 앞면에는 섬유와 종이가 일부 겹쳐진 채로 남아있다. 바닥면에도 2조의 음각선을 1.7cm 간격으로 2줄 장식하였다. 사리함의 양식 및 연대로 보아 대지국사 법경과 연관되는 유물로 추정된다.

은제투각칠보문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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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 3개와 청동 제16화형의 고리 1개, 3개의 은제사다리꼴 장식편으로 구성되어있다. 구슬의 표면에서 금박의 흔적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원형을 은으로 성형한 후 도금한 것으로 추측된다. 구슬 중 크키가 큰 것은 사슬통로(구멍)가 5개 뚫려있고 작은 것은 각 3개와 4개씩 뚫려있다. 사슬의 두께는 0.24cm에서 0.35cm에 해당한다. 사다리꼴 장식편은 상단에서 사슬의 흔적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사슬 끝단 마무리 장식으로 이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석조보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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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건물지 불단의 내부토에서 출토된 것으로 후대에 불단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매납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3.7cm의 소형이나 지금까지 출토된 바 없는 특이한 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통 오불보관(보관에 다섯부처가 장식)이나, 칠불(석가모니 등 과거에 출현한 일곱부처)을 표현한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이번에 출토된 보살두는 삼불보관을 갖추고 있어서 한국에서는 처음 출토되는 형태이다. 입술과 화불의 일부분에 붉은 채색을 하였던 흔적이 보이며, 머리부분에도 검은색으로 채색한 흔적을 볼수 있다.